오늘도 ‘아차!’ 싶었다. 굳이 안 해도 될 이야기를 꺼내고 이렇게 돌아서서 바로 후회하는 모습이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문득 나이를 잊을 때가 있다. 돌아서서 방금 한 말을 후회하기도 하고 옹졸했던 마음을 탓하기도 하면서, 연신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되뇌기도 한다. 이런 후회의 순간은 이삼십 대보다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찾아오는 것 같다. 왜 자꾸 이런 후회가 반복될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결론은 나이 듦에 대한 준비가 없었던 게 원인이었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나이는 자연스레 위를 향하지만, 그에 맞는 마음가짐이나 언행은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낮아질 수도 있다. 결국 나중에는 뒤에서 나잇값도 못한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나이에 맞는 성숙함을 제일 드러내기 힘든 것은 말이다. 말의 최대 단점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한 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생각이 뇌를 거쳐 입으로 나오는 동안 여러 차례의 자체 검열을 거쳐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 자체 검열 등급이 점점 낮아진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 상대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는 조언, 거기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는 듣는 상대방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매력들을 어필하기보다는 대신 입을 다물고 들어주는 것이 좋다. 비언어적 표현까지 더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있다는 점을 느끼게 해 주면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꼭 필요한 말을 하되, 결론은 간단하게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말 다음으로 조심해야 할 것은 행동이다. 나이가 들면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해진다. 나이에 맞는 대접
을 바라면서 정작 대접받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으며 어쩌다 받은 대접도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다. 나이가 들며 깊어져야 할 것은 주름살뿐만 아니라 바로 배려의 깊이이다. 모든 것에 순서를 따지기보다는 언제든, 누구에게라도 선뜻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배려심이야말로 나이 든 사람이 가져야 할 덕목인 것 같다.
이렇게 잘 알고 있어도 늘 후회하는 경우가 생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골프나 테니스 같은 운동이 떠올랐다. 평소에 의식하고 자세를 열심히 연습하더라도 막상 필드를 나가거나 코트에서 실전을 맞이하게 되면 그동안 의식하며 연습했던 자세보다는 평소에 몸에 익혀진 무의식적인 자세가 나오게 된다. 골프나 테니스 선수들이 실전에서 나오는 자세들은 엄청난 연습량을 바탕으로 나오는 무의식적인 자세들이다. 나이 듦에 대한 말과 행동의 준비도 의식적으로 많이 연습해야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나의 품성으로 만들 수 있다. 나이는 숫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뜻한다. 나이에 맞는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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