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학교에 제출하는 서류를 보면 항상 ‘장래 희망’ 이 있었다. 무엇보다 ‘장래 희망’은 나는 물론 부모님도 힘들게 하는 사항이었다. 어떤 직업을 가질지 생각해 보지 않은 장래 희망을 적으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결국은 과학 과목을 좋아하니까 그냥 ‘과학자’라고 대충 적어서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고등학교까지 수년을 나의 장래희망 칸은 ‘과학자’가 차지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하고 있다. 선생님을 하며 내가 어릴 적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학생들에게 받는 서류에 ‘장래 희망’이라는 고문 아닌 고문이 남아 있다.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아이들 역시 나중에 어떤 직업을 가질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초등학교 시기에 너무 이른 고민이 아닌가 한다. 일찌감치 특정 분야에 재능이 있어서 그것과 관련된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도 좋지만 초등학교 시기에 꼭 특정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목표가 없어도 괜찮다. 과연 초등학교 시기에 생각했던 직업과 어른이 되어 선택하는 직업이 일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직업 선택과 관련해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한다. 흥미, 성격, 적성 등 자신을 이루는 여러 요소를 알고 이해하는 ‘자기이해’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자기 이해’가 진로 선택의 출발점이고 자신에게 알맞은 길을 찾는 길잡이가 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기는 ‘자기 이해’를 위한 첫 발걸음에 해당한다. 아기가 첫 발걸음을 떼면서 바로 뛸 수 없듯이 특정 영역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때 흥미나 적성을 바로 찾기는 힘들다. 음악에 전혀 관심도 없다가 중학교에 가서 바이올린을 시작하면서 음대에 진학해 연주회에 초대하는 제자도 있고, 수학을 잘해서 영재교육원까지 다녔지만 나중에 변호사가 된 제자도 있다. 첫 발걸음을 어느 방향으로 정했다고 해서 꼭 그 방향으로만 갈 필요는 없다. 또 자신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한 채 부모의 이끌림에 따라 진로를 선택하게 된다면 나중에 혼란이 따를 수 있다. 운전을 할 때마다 목적지를 내비게이션에 검색해서 알려준 길만 따라다니다 보면 나중에 자주 다녔던 길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진로 역시 부모가 정해준 길로만 따라가는 아이로 만든다면 아이가 진로를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초등학교 시기에는 길을 정해주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에 빠트려서 자기를 이해하고 자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스스로 탐색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면 아이는 그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위대한 일을 해내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진로를 정할 때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일보다 아이가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기다리며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여유를 주도록 하자.
'초등 생활 사용 설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초등학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것! (0) | 2025.10.02 |
|---|---|
| 만화책에 빠진 아이들 (0) | 2025.09.24 |
| 어디에서 배움이 일어나는가? (2) | 2025.07.05 |
| 반말을 쓰는 아이, 존댓말을 쓰는 아이 (3) | 2025.06.27 |
| 시행착오가 없는 딱 한 가지! (2) | 2025.06.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