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아이의 인사를 받으며 ‘잘 다녀왔어? 학교에서는 별일 없었지?’라고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에는 영혼이 없다. 사춘기를 감안하더라도 서먹서먹해지는 깊이 없는 대화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난 남자 형제가 없다 보니 아들과는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지내며 속에 있는 고민들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아이의 성격과 나의 자녀 교육 방식이 맞물리며 어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이를 볼 때마다 아이가 어릴 때 내가 조금 다르게 행동하고 말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자녀 교육에는 시행착오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가 크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아는 지식과 내가 자라왔던 방식,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버무려 나만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양육 레시피를 만들어 아이를 키웠던 것이다. 아이의 성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가 정답인 것처럼 강요하고 밀어붙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태어나면서부터 휴대폰을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 무조건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했던 것이다. 예전과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이를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양육하는 것은 선인장을 벼를 재배하는 환경에서 키우는 것과 같은 꼴이다. 게다가 부모와 자녀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뒷받침해 주는 환경이 달라졌다. 맞벌이 부모의 증가, 디지털 기기의 보급, 높은 사교육 참여 등으로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낳아서 키우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후회를 한다. 말, 행동, 선택에 대한 후회 등 후회로 인해 성장하고 깨달음을 얻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하지만 자녀 교육에는 후회가 소용없다. 부모가 후회를 하는 사이 아이는 상처받고 그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기 때문이다. 자식을 키우는 것은 부모가 함께 커가는 과정이다.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은지만 생각하지 말고 어떤 아이인지 먼저 이해하고 부모의 인내심을 키우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길이다. 시행착오를 겪을 수 없는 자녀 교육에 아이의 든든한 지지대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부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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