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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기록

시간을 들여야 얻을 수 있는 것들

by 옆반선생님 2025. 6. 13.

 

 

얼마 전 즐겨 보던 드라마의 시즌 4가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들뜬 마음으로 날짜를 기다리는데 문제는 직전 시즌 3의 내용이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리 시즌 3과 시즌 4 사이에 1년 넘는 기간이 있었다고 해도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니. 기억력 부족을 탓하기도 전에 시즌 4를 재미있게 보려면 기억을 떠올려야 할 판이었다. 그렇다고 10시간 넘는 시즌 3의 내용을 다시 보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때 나를 구원해 준 것이 유튜브에 올라온 1시간짜리 요약 영상이다. 다행히 1시간의 요약본은 내 기억을 되돌려 머릿속에 10시간의 시즌 3 내용을 넣어주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유튜브에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 운동 경기, 심지어 책까지도 요약해서 올려져 있다. 시간의 가성비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워낙 즐길 거리가 넘치는 시대에 살다 보니 다양한 것을 즐기기 위함 일 수도 있다. 나 역시 보고 싶었지만 굳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았던 드라마의 요약본을 찾아봤다. 재미있는 부분을 편집해서 꼭 알아야 줄거리만 소개하니 시간도 절약되고 나름 재미있었다. 그렇게 몇 개의 영화, 드라마 요약 영상을 보고 나니 온전히 작품 하나를 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처음부터 긴 시간을 들여 보는 것이 지루해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앞으로 가기 버튼을 누르면서 보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보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즐기기보다는 굳이 왜 이렇게까지 해서 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잔잔한 여운이 남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내용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이었다. 

 

출처 freepik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특정 장면에 흐르는 음악이나 그 순간 등장인물의 감정 전달을 보며 느끼는 내 감정이 사라짐을 알게 되었다. 짧고 흥미롭게 가공된 줄거리에 길들여지면서 나의 감정, 생각, 느낌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책도 마찬가지였다. 가성비 높은 지식 소비를 부추기는 책 소개 영상을 보면 결국 책의 내용은 흐릿하게 남지만 책을 읽으며 느끼는 생각은 가질 수가 없다. 책을 읽는 즐거움은 책에서 얻는 지식에도 있겠지만 읽으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공허한 요약본에 내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돌아볼 일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듯이 시간을 들여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내 생각을, 감정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느리게 가더라도 나를 위해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들에 시간을 써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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